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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감화원 원혼 달랜다(R)

김윤 기자 입력 2019-08-23 21:13:44 수정 2019-08-23 21:13:44 조회수 2

◀ANC▶
일제강점기 목포 고하도에는
소년범죄자들을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목포 감화원'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명목과는 달리 연고가 없는
발달장애인들이 수용됐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들의 행적은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내일(24일) 이곳에는 수용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진혼제가 처음으로 열립니다.
김윤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ND▶

일제강점기인 1938년 목포 고하도에서 설립된 국립 목포학원 부지입니다.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조선감화령에
근거해 원주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졌고
통상 목포감화원으로 불렸습니다.

5만여 평이 넘었다는 학교부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학교정문 기둥과 학교축대,
우물터 등만이 남아 있습니다.

목포 감화원은 당시 전국 5대 도시의 하나였던 목포에 있었지만 철저히 외부세계와
격리됐습니다.

섬에서도 외딴 곳에 세워졌고
학교 정문마저 바다를 향해 있어 선박이 아니면 오도가도 못하는 곳.

설립초기 발달장애인 24명 등 모두 33명이
수용됐고 의무요원 2명 등 관리자만 18명이
배치됐지만 해방이후 지금까지 수용자들의
행적은 밝혀진 게 없습니다.

◀INT▶최성환 목포대 사학과 교수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강제로 이쪽에 모아놓고 인권을 유린하고 사회적으로 격리를 시켰던 그런 장소 기능이 강했던 곳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특히, 목포 감화원은 해방 이후
22년 동안이나 시설이 유지됐습니다.

대도로 불렸던 조세형도 유년시절 이곳에서
생활했던 자신의 끔찍했던 기억을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INT▶최성환 목포대 사학과 교수
"죽은 아이들의 경우 장례를 제대로 치러주지 않고 팬티에다 이름만 써가지고 저 바다로 떠내려보내는 그런 것들을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조세형)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목포 감화원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려는
움직임도 올해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목포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에서
어린 원혼을 달래주는 진혼제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INT▶손재호 갯돌 예술감독
"우리 지역의 예술가들, 전국의 예술가들이
여기 있는 아픔을 씻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기자출연)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에도
유지됐던 목포 감화원,
이곳을 둘러싼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시급해 보입니다. MBC NEWS 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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