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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인물] 박준영 변호사

김진선 기자 입력 2016-08-29 08:15:35 수정 2016-08-29 08:15:35 조회수 1


뉴스와 인물입니다.
억울한 사람들을 돕던 변호사가
파산 위기에 놓였다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무기수 김신혜 사건의
재심을 이끌어낸 변호사로 익숙한데요.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1. 지금 인터넷으로 박 변호사님을
후원하는 사람이 8천 명이 넘었습니다.
금액도 3억 원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이 펀딩을 시작한 계기가 어떤가요?

제가 재심 사건 등 공익 사건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개인적으로 굉장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거든요. 개인적인 어려움은 어떻게 해서든 극복할 수 있는데 공익 사건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이런 사회적인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방안을 생각했던 것이고 이게 스토리 펀딩으로 진행하게 된 겁니다.처음에는 저도 과연 이런 펀딩이 전래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기대도 있었지만 우려도 굉장히 컸는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격려를 받고 있고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오히려 열정적으로 응원해 주시고 기뻐해 주셔서 정말 행복합니다.

2. 무기수 김신혜 사건과
삼례 3인조 사건,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까지
재심을 이끌어내셨어요. 재심에
매달리게 된 이유는 뭐였습니까?

저도 재심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또 변호사들 중에서 재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확정 판결을 뒤집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원 노숙소녀 사건을 통해서 재심을 접하게 됐고 노숙인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과정에서 재심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배우게 됐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사건들에 관심을 갖게 됐던 거고 때로는 이런 사건들이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고 그러다보니까 이렇게 재심 사건을 계속 하게 되고 지금도 계속 여기 저기서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3. 박 변호사님과는
무기수 김신혜 사건으로 처음 만났는데요.
김신혜씨 사건의 진행상황도 궁금합니다.

제가 김신혜씨 사건을 처음 접했던 시점은 2014년 여름이었습니다. 충격이었죠. 어떻게 억울하다는 주장을 15년 이상 해온다는 것 자체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관여를 했고 재심 청구가 들어간 시점은 이듬해 2015년 1월이었습니다. 재심 개시 결정은 지난해 말에 있었던 거고요. 그런데 결정 자체에 대해서 검찰이 불복했고 광주 고등법원에서 개시여부에 대한 판단 심리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사건의 경우에는 대한 변호사협회 인권이사님 이하 많은분들이 변호인단을 구성해서 관여하고 있고 저는 다른 사건에 집중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4. 완도 출신에 목포대를 중퇴하셨어요.
언제 지역을 떠나셨는지도 궁금하고,
또 이렇게 힘든 길을 선택하셔서
개인적 삶은 어떨지도 궁금한데요.

저는 전라도 완도 노화도 출신입니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30분 가량 들어가죠.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요.
목포대학교 전자공학과를 한 학기 다녔습니다. 계속 다니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습니다. 제 삶의 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가장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수단이 고시였던 겁니다. 그래서 하게 됐던거고. 그때만 해도 세속적인 생각을 갖고 공부를 했지만 공부를 하고 변호사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제가 자녀들이나 가족들의 밥을 못 먹일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다만 부채 규모가 늘어나다 보니까 굉장히 심적으로 불안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돈이 나올 곳이
한계가 있었고요. 그래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자녀들이었죠. 자녀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한테 아버지가 어떤 개인적인 욕심에
의해서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아닌가 책임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5. 현재 각지 교도소에서
억울한 사연들이 박 변호사님께로
쏟아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꿈을 갖고 계신지?

제가 이렇게 살려고 변호사를 한 것은 아니었는데요. 사람은 살아온대로 살아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사느냐가 미래를 결정짓는데요. 제가 어찌하다 보니까 이렇게
재심사건이나 형사사법 피해자들 사건을 주로 하게 됐고 그런 사건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시민들이 응원해주고 있는데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렵죠. 교도소에서 메일이나
전화를 통해서 방문을 통해서 수 많은 분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데 가능한한 그런 분들의 목소리를 듣는 그리고 실질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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