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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침략의 교두보, 옥도의 흔적(R)

김윤 기자 입력 2019-03-06 21:15:02 수정 2019-03-06 21:15:02 조회수 0

◀ANC▶

3.1운동 백주년 기획 시리즈.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 야욕은
조선시대 공도와 해금의 대상이었던
섬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일제는 서해와 남해를 아우르는 작은 섬,
옥도를 접수해 해군 부대를 진주시켰고
아직도 일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김윤 기자가 보도합니다.

◀END▶

얼핏 하늘에서 보면
한반도 모양으로 보이는 신안군 하의도에 딸린 작은 섬, 옥도.

'대일본제국해군용지'라는 글씨가 선명히
보이는 비석이 마을 안길 옆에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비석이길래
이 작은 섬에 일본해군이 등장하는 걸까.

비석이 뒹구는 근처에는 일본군들이 팠다고
전해지는 대형 우물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일제의 이같은 흔적은 백15년 전인
1904년 러일전쟁 시기로 올라갑니다.

◀INT▶김경완 *신안문화원 사무국장*
"옥도에 물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좋았고 양이 많아 가지고 그 당시 해군 기지에 용수로도 사용했지만 군함들이 지나갈 때 이곳에서 물을 공급 받았습니다."

(기자출연)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은 섬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 중에 하나가
이곳 옥도입니다.

(C/G)서해와 남해를 잇는 8개의 뱃길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옥도는 본래 '팔구포'라고
불렸습니다.

옥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간파한 일제는
1904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비밀리에 해군기지를 건설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최초로
무선전신 취급소와 기상관측소가 설치됐습니다.

일본군들의 목욕탕으로 사용했다던 구조물도
덤불 속에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INT▶송하성(73)*옥도 주민*
"항상 물줄기가 흐르고 그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결과에요. 이것이"

작은 섬이지만 이러한 일본의 침탈에 대항하는 움직임도 일어납니다.

(C/G)천9백9년 7월 십여 명의 의병들이
옥도의 일본 관리인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당시 목포경찰서 보고서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섬을 집요하게 이용하며 조선을 병탄했던
일본.

민중들의 의병활동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외딴 섬에서도
일어나는 등 당시의 저항의식은 고스란히
3.1정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MBC NEWS 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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