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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최청자 세종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취재후기 (김지선 기획PD)

“목포의 눈물처럼 내 고향 목포를 상징하는 대중 춤을 꼭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목포에 자주 방문하여 계승해야 할 문화적 가치를 살피면서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툇마루 무용단의 총 예술 감독이자 현재 세종대학교 무용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신 ‘최청자’ 교수를 만났다.
그녀는 1945년 목포출생의 무용가이자 안무가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적 현대무용 개발에 힘써 온 무용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지난 40년간 100편이 넘는 무수한 작품들을 기획하고
안무하면서도 ‘한국의 소재’를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특히 주력 해오셨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활동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북한에 선보였던
‘겨레의 갈망‘과 외국인 최초 특별 안무상(일본 국제 콩쿨)을
수상했던 ‘살어리랏다’, 그리고 최청자 교수가 남긴
시대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불림소리’가 있다.
특히 ‘불림소리’는 정치적으로 최대 격동기였던
80년대 한국 사회의 고통받는 민중들을 보며
‘사회적 갈등을 희망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녀가 유학을 마친 후 귀국하여 처음으로 선보였던
‘갈증’ 역시 목포 출신의 최고의 극작가인 ‘차범석’ 선생의
작품을 현대무용으로 재해석한 것인데, 평소 차범석 작가를
존경하는 스승으로 생각했던 최청자 교수는
‘가뭄, 가난, 그리고 바다’에 모티브를 둔 무용을 해보고자
그의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차범석 작가는 외국 유학까지 다녀와서 고향을 그리는
작품을 한다는 것에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작품을 현대무용으로
표현하는 것에 흔쾌히 허락했는데, 82년 차범석 작가가
최청자 교수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어 일부 발췌해 보았다.

『영국까지 가서, 그것도 현대무용을 배웠다는
젊은 여자가 부둣가에 늘어서 있는 물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건 곧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구나.
외국에 나가보면 내 것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그 소박한 철학을 춤으로 표현하겠다는 이 여자의 발상은
일단은 판정승(判定勝)이라고 해두자』

전라남도 ‘목포’에서 나고 자라오신 최청자 교수.
이번 대담을 통해 전해주신 삶 속에서도
늘 ‘고향’이 있었다.
추억 속 어린 최청자의 주요 무대였던 호남동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함께 춤을 추듯이 리듬에 맞춰 뛰어놀기도 하고
그 앞에 펼쳐진 바닷가를 보며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다짐해가며 성장했다고 한다.

그녀의 무용 인생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당시 천주교 재단의 유치원을 다니면서 수녀님 지도하에
안무에 맞춰 춤을 추며 관객의 호응을 받아냈던 그 순간이
너무나 강렬해서 잊지 못하고 무용가의 꿈을 이어왔다고 한다.

이렇듯 최청자 교수는 평생 무용 인생을 살아오면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따뜻한 추억들과
목포만이 갖고 있었던 예술적 환경들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큰 자양분이 되었다며 ‘고향’에 대한
애정과 감사함을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는 자신이 받은 모든 것들을 다시
돌려줄 때가 되었다며 지역 출신의 예술인으로서
‘목포’라는 지역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보였다.
최청자 교수가 보여준 결심과 앞으로의 활동 들이
목포 문화발전의 마중물이 되어 지역의 예술인들과
더불어 ‘목포’가 문화예술도시로써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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