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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문학평론가 서영채 교수

1.서영채 교수의 ‘풍경’(취재후기:김지선 기획PD)

“저한테는 목포가 문학이었습니다.
목포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울림이 있어요.
울림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고,
그래서 아마 글쓰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목포의 풍경을 마음에 담아
글로 담아낸 작가 서영채.

김현, 황현산을 잇는 문학평론가로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의 교수이다.

'목포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서영채 교수의 소개글에 항상 빠지지 않는 이 문구는 초등학교(당시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지낸 고향 목포의 정서와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반증이다.

부모님의 권유로 서울 친척집에서 홀로 유학생활을 할 때
서울이 아닌 목포에 서 있는 같은 기묘한 경험도 했다고 한다.
지독한 향수병이었을까.

“그래서 저는 방학 때만 되면 트렁크를 꾸리고
책과 옷을 챙겨가지고 서울역으로 가서 기차를 탈 때 제일 설레었어요.
기차를 타고 나주 영산포 지나고 일로를 지나서,
목포역으로 굽어서 들어갈 때 그 열차길의 풍경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냥 평범한 소도시의 풍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그런 풍경들이죠.”

잠시 동안 나는 ‘어릴 적 그’를 바라보게 되었고,
12살도 채 안된 사내아이가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고향이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을지, 마음이 아렸다.

<풍경이 온다>라는 책에서 그는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잊히지 않아야 비로소 풍경이 된다고 표현했다. 한 사람의 일상 속에 있는 평범한 장소나 장면이라도 잊을 수 없는 풍경일 수 있다는 것이다.

2. ‘책을 읽는다는 것’

그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을 쓰고 읽었던 시대의 사람들의 삶, 현재 우리의 삶,
그리고 그 삶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는
자기 자신의 삶을 읽는 것이라 했다.

바로 ‘문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문학의 눈으로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단순히 문학을 통해 지식과 견해를 넓히면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길 수 있을까?’
‘어떠한 ‘경지’에 도달해야만 가능한 것일까?…’

그는 대학의 학부수업에서도 ’문예학’을 문학작품으로만 다루지 않고
학생들에게 ‘왜 책을 읽는지? ‘특별히 왜 문학작품을 읽어야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구성하고 직접 묻고 쓰게 했다. 그가 원한 건 스스로 깨우치는 힘. 문학을 만나는 순간 나와 우리와 시대의 삶 까지를 볼 수 있는 힘을 기르기를 바란 것이다.


3. 그가 바라본 ‘목포’ -‘센티멘탈리즘’

1897년 개항 이후 사업적으로 번성하면서 당연히 돈도 사람도 모일 수밖에 없었던 곳 ‘목포’.

예술이 번성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일제강점기였기에 묘한 센티멘탈리즘이 있는 것이라 했다.

“목포가 한창 번성했을 때 나왔던 노래가 ‘목포의 눈물’이잖아요.
목포의 영광이나 목포의 기쁨이나 이런 게 아니라 목포의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태생적으로 그 안에 어떤 슬픔을 간직한 도시? 같은 느낌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느낌들이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취향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는 목포라는 도시자체가 ‘문학적’이라고 표현한다.
목포라는 이름 자체가 그렇고, 식민지시대에 부흥하고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 호남선 완행 열차 같은 느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예술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태생적인 문학적 요소에 젊고 건강한 낭만과 몰락해가는 낭만을 예술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다면 아주 ’힙(hip)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제안했다.

문학과 낭만이 있는 고향 ‘목포’에 미래 요소가 결합된 도시 목포를 꿈꾸고 있었다.

4. 인터뷰 그 후 ——

‘풍경’과 ‘책’ 그리고 고향 ’목포’

한 사람의 눈과 입을 통해 재탄생한
또 다른 ‘풍경’이 만들어졌다.

이 세 단어가 함께 등장하는 순간
내겐 언제나 서영채 표 ‘풍경’으로 강렬하게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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