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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아 글쎄. 까마귀도 고향에서 온 까마귀가 더 반갑다는데
이렇게 목포에서 후배들이 찾아와주니 너무 반갑네.”
목포에서 서울까지 인터뷰를 위해 달려온 고향 후배들이 반가워,
김종규 관장은 정겨운 표현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첫 대면 중 강렬했던 장면이다.
거짓과 가식이 전혀 첨가되지 않은 진짜 행복의 표현이었다.
낯모르는 사람들인데 단지 고향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반가울 수 있을까?
아마도 ‘고향’은
순수했던 그 시절을 보냈던 장소이자,
꿈을 키워나갔던 영혼의 안식처였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반가우셨을 것이라 짐작됐다.
사실 김종규 관장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내가,
대담 프로그램의 진행을 앞두고 그의 삶의 흔적들을 하나씩 꺼내어보면서
출판계와 지식문화계를 이끌어온 일뿐 아니라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들을 찾고 만들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가 왜 ‘출판계의 대부’이자 ‘지식문화계의 큰 어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김종규 관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출판 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장이지만,
1960~70년대에 전집류 장서들을 출간한
삼성출판사의 회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출판업과 관련한 그의 모든 역사는 고향 ‘목포’에서부터 시작됐다.
1950년대에 여덟 살 터울의 친 형이 목포에서 서점을 운영하면서
고서를 사고팔고 하는 것을 어깨 넘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처럼, 저는 우리 형님이 일찍이 헌책방 서점으로부터 출발을 해서
환경이 아주 좋았어요.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읽게 되고, 그때 사명감이 생겼어요.”
그가 문학 쪽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일찍이 서점 속의 책읽기에서 비롯됐다. 출판박물관까지의 여정의 시작이었다.
삼성출판사를 직접 운영하면서
세계문학전집, 세계사상전집, 한국문학전집, 제3세대 한국문학전집 등
본격적으로 출판업의 붐을 일으켰고,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 판매 전담반을 만들어 전국적인 독서운동을 일으키며
인지에 찍는 도장이 닳을 정도로 판매량을 급증시켜 또 다시 붐을 이끌어 냈다.
당시 김종규 사장이 박경리 작가에게
새 도장을 요청했더니 ”김사장이 알아서 파세요”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저자와 출판사의 신뢰관계가 아주 깊었던 유명한 일화도 있다.
김종규 관장은 출판과 그와 관련된 역사문화유산을 지켜내는 일에도 앞장섰다.
고서적 수집과 일제 강점기, 독립외교의 거점이었던
대한제국주미공사관을 되찾는데도 큰 역할을 했고, 이런 활동의 연장선에서 10년 넘게
무보수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관련 사업들을 확장해 나가기도 했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인간의 육체라는 건 그릇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릇이 그 사람은 아니다며
그야말로 혼이 있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혼의 원천을 바로 ‘문화예술’로 꼽았다.
고은 시인의 연작시편인 ‘만인보’ 안에서 그는 이렇게 표현되었다.
‘누구에게도 구성지고 반가움 불러일으켜
누구에게도 자상하고
누구에게도 오래 알려져 있는 사람
김종규.
김종규가 걸어온다
저쪽에서 먼저 알아보고 손 들어
벌써 사람과 사람이 반가움의 무덤에 파묻힌다
왜 그런지
그의 주위에는
예술과 교수 정객 묵은 정객
회장 사장들이 찬소리 다섯마당으로 에워싸고 있다
언제나 껄껄 웃음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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