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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신청곡

4.28 충무공 탄신일............

참고링크: gfgf34.com.ne.kr/index.htm |


      

   수도 서울을 지키는 아름다운 광화문의 충무공 동상...

   

   28세때 무과시험장에 말위에서 떨어져 왼쪽발을 버드나무껍질로
   감싸고 다시 말에 오르려는 모습... 

   

   이순신 - 李舜臣 (1545~1598)

   1576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지위가 낮은 벼슬만을 지내다가, 
   1591년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어 군비 확충에 힘썼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에서 승리하고, 
   사천에서 거북선을 처음 사용하여 당포, 한산도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남해안 일대의 적의 수군을 완전히 격파하고 한산도를 본영으로 삼아 
   최초의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다.

   1597년 원균의 모함으로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도원수 권율의 밑에서 백의종군하였다.
   정유재란 때 원균이 참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에 다시 임명되어,
   명량에서 133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부수었다. 
   다음해 철수하는 적선 500여 척이 노량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의 수군과 연합작전을 펴, 적군을 기습하여 싸우던 중 전사하였다.

   글에도 능하여 《난중일기》를 비롯하여 시조와 한시 등 여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충무공 이순신은 매일 일기를 쓰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또 내일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틈만 있으면 책을 읽고 시가를 읊기도 하였는데...


   임진년(1592년) 3월~


   3월 초1일 [양력 4월 12일]<신유> 
   망궐례를 했다. 식사를 한 뒤에 별방군과 정규군 하번군을 점검 하고서 놓아 보냈다. 
   공무를 마친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3월 초2일 [양력 4월 13일]<임술>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나라제삿날(中宗 章敬王后 尹氏 祭祀)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승군 (僧軍) 일백 명이 돌을 주웠다. 

   3월 초3일 [양력 4월 14일]<계해) 
   비가 저녁내 오다.
   오늘은 삼짇날 명절이건만 비가 이렇게 내리니 답청도 못하겠다.
   조이립(趙而立) 우후·군관 등과 동헌에서 이야기하며 술을 마셨다. 

   3월 초4일 [양력 4월 15일]<갑자> 
   맑다. 
   아침에 조이립(趙而立)을 배웅하고 객사 대청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서문밖 해자와
   성을 더 쌓는 곳을 순시했다.
   승군들이 돌줍 는 것을 성실히 하지 않으므로 책임자(首僧)를 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아산에 문안갔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 하니 다행이다. 

   3월 초5일 [양력 4월 16일]<을축>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군관들은 활을 쏘았다.
   저물녁에 서울 갔던 진무가 돌아왔다.
   좌의정 류성룡(柳成龍)의 편지와 \"증손전 수방략(增損戰守方略)\"이라는 책을 가지고 왔다. 
   이 책을 보니 수 전·육전·화공전 등 모든 싸움의 전술을 낱낱이 설명했는데, 
   참으로 만고의 훌륭한 책이다. 

   3월 초6일 [양력 4월 17일]<병인> 
   맑다. 
   아침밥을 먹고난 뒤 출근하여 군기물을 점검했는데, 활·갑옷· 투구·전통·환도 등이
   깨지고 헐어진 것이 많아 색리·궁장·감 고 등을 문책했다. 

   3월 초7일 [양력 4월 18일]<정묘>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을 쏘았다. 

   3월 초8일 [양력 4월 19일]<무진> 
   종일 비가 내렸다.

   3월 초9일 [양력 4월 20일]<기사> 
   종일 비가 내렸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 초10일 [양력 4월 21일]<경오> 
   맑으나 바람이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을 쏘았다. 

   3월 11일 [양력 4월 22일]<신미> 
   맑다. 

   3월 12일 [양력 4월 23일]<임신> 
   맑다. 
   식사한 뒤에 배있는 곳으로 나가 경강(여수시 봉산동)의 배를 점 검했다.
   다시 배를 타고 소포(여수시 종화동 종포)로 나가는데
   때마침 샛바람이 세게 불고 격군(보조사공)도 없어 도로 돌아왔다. 
   곧바로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3월 13일 [양력 4월 24일]<계유> 
   아침에 흐렸다. 순찰사에게서 편지가 왔다. 

   3월 14일 [양력 4월 25일]<갑술>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에 순찰사(李洸)를 만나러 순천으로 가는데, 
   비가 몹시 퍼부어서 길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선생원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서 다시 해농창평(순천시 해룡면)에 이르니, 
   길 바닥에 물이 석 자나 괴었다.
   겨우 겨우 순천부에 이르렀다. 저녁에 순찰사와 격조를 터 놓고 이야기했다. 

   3월 15일 [양력 4월 26일]<을해> 
   흐리며 가랑비 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다락 위에 앉아서 활쏘고, 군관들에게는 편을 갈라 활을 쏘 게 했다. 

   3월 16일 [양력 4월 27일]<병자> 
   맑다. 순천부사가 환선정에 술자리를 베풀었다. 겸하여 활도 쏘았다. 

   3월 17일 [양력 4월 28일]<정축> 
   맑다. 
   새벽에 순찰사에게 작별을 고하고 선생원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인 뒤에 본영으로 돌아왔다. 

   3월 18일 [양력 4월 29일]<무인>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 19일 [양력 4월 30일]<기묘>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 20일 [양력 5월 1일]<경진> 
   비가 몹시 쏟아지다. 
   저녁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각 관방의 회계를 밝혔다.
   순천 관내를 수색하는 일이 제 날짜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대 장·색리·도훈도 등을 문책했다. 
   사도첨사(김완)에게도 만날 일 로 공문을 보냈는데, 혼자서 수색했다고 했다. 
   또 한나절 동안에 내나로도·외나로도(고흥군 봉래면)와 대평두·소평두 섬을 다 수색하고
   그 날로 돌아왔다고 하니, 이 일은 너무도 엉터리 거 짓이다. 
   이를 바로 잡으려는 일로 흥양과 사도첨사에게 공문을 보냈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일찍 들어왔다. 

   3월 21일 [양력 5월 2일]<신사> 
   맑다.
   몸이 불편하여 아침내 누워 앓다가 저녁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 를 봤다. 

   3월 22일 [양력 5월 3일]<임오> 
   맑다.
   성 북쪽 봉우리 아래에 도랑을 파내는 일로 우후 및 군관 열 명 을 나누어 보냈다. 
   식사한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 23일 [양력 5월 4일]<계미> 
   아침에 흐리고 저녁나절에는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보성에서 올 널빤 지가 아직 안 들여 왔기 때문에 색리에게 다시 공문을 보내어 독 촉했다. 
   순천에서 심부름꾼을 보내 온 소국진(蘇國進)에게 곤장 여든 대를 쳤다.
   순찰사가 편지를 보내었는데 보니,
   \"발포권관은 군사를 거느릴 만한 재목이 못 되기로 갈아 치워야 하겠다\"고 하 므로 아직 갈지 말고 
   그대로 유임하여 방비에 종사하게 해달라고 답장을 보냈다. 

   3월 24일 [양력 5월 5일]<갑신> 
   나라제삿날(世宗 昭憲王后 沈氏 祭日)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우후 가 수색하고 탈없이 돌아왔다. 
   순찰사와 도사(都事)의 답장을 송 희립(宋希立)이 아울러 가져왔다. 순찰사의 편지 가운데,
   \"영남 관찰사(김수)의 편지에 `대마도주(종의지)가 공문을 보냈는데,
   벌 써 대마도 배 한 척을 귀국(조선)에 보냈는데, 
   만일 도착하지 않 았다면 풍랑에 깨졌을 것이라\'고 했더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매우 음흉하다. 
   동래에서 서로 바라다 보이는 바다인데 그럴 리가 만 무하며, 말을 이렇게 거짓으로 꾸며대니, 
   그 간사함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하였다. 

   3월 25일 [양력 5월 6일]<을유>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경상병마사가 평산포에 도착하지 않고 곧장 남해로 간다고 하였다. 
   나는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을 한스럽다는 뜻으로 답장을 보냈다. 
   새로 쌓은 성을 순시해 보니, 남쪽이 아홉 발이나 무너져 있었다. 

   3월 26일 [양력 5월 7일]<병술> 
   맑다.
   우후와 송희립(宋希立)이 남해로 갔다. 저녁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3월 27일 [양력 5월 8일]<정해> 
   맑고 바람조차 없다.
   일찍 아침밥을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여수시 종화동 종포)에 이르러 
   쇠사슬을 가로질러 건너 매는 것을 감독하고, 
   종일 나무 기둥 세우는 것을 바라 보았다.
   겸하여 거북함에서 대포 쏘는 것 도 시험했다. 

   3월 28일 [양력 5월 9일]<무자>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는데, 다섯 순은 모조 리 다 맞고, 두 순은 네 번 맞고, 세 순은 세 번 맞았다. 

   3월 29일 [양력 5월 10일]<기축> 
   맑다.
   나라제삿날(世祖 貞憙王后 尹氏 祭日)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아산 고향으로 문안 보냈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 니 참으로 다행이다.

   계속...

   

   4월...
   벚꽃이 아름답군 요^^
   모든이에게 행복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4월 17일 전주에서~


   


   흐르는 곡 강수지 \" 그때는 알겠 지~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2-16 12:34:48 즐거운오후2시_사연 & 신청곡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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