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평생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권리
회복을 위해 애썼던 이금주 태평양전쟁
희생자광주유족회장이 별세했습니다.
자신 역시 태평양전쟁의 피해자이면서도
30년 넘게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발벗고 섰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모였습니다.
송정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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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넘게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한 길을 걸었던 이금주 회장이
향년 10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과 함께 법정을 오가며 함께 투쟁을 했던
동료들은 고인의 죽음이 믿기지 않습니다.
(인터뷰)정경희/추모객
“살아 계셨을 때 그 고요한 투쟁가의 모습이
어제 전 잠 한숨도 못 자고 주마등처럼
회장님하고 같이 했던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올라서”
이금주 회장 역시 일제 전쟁범죄의 피해자였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이 일본 해군으로 끌려갔고, 그후로 3년 뒤
남편의 소식은 전사통지서 한 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이 회장이었기에 정부나 정치권 누구도
일제 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1988년에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를 발족했습니다.
이후 1천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한 광주 천인
소송을 시작으로,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관부재판,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등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30년 넘게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현장음)이금주 회장/1992년 천인소송 당시 모습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서 굶주림과 구타와
학대 속에서 굴욕감에 치를 떨어야 했던
수많은 피해자 여러분 왜 우리는 그 상처에
치유도 받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까?”
투쟁을 하는 동안 소송을 뒷받침하느라 일본을
오간 것만 80여 차례가 넘고 7번의
일본 재판에서 기각당한 것만도
17차례에 이릅니다.
(인터뷰)이국언/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
“17번 패하는 그 싸움이 있지 않았다고 하면
일제 피해자 이 싸움은 지금까지
이어올 수 없었습니다.”
질 줄 알면서도 계속됐던 그녀의 끈질긴 투쟁은
지난 2018년 근로정신대 피해자가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한국 법원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빛을 봤습니다.
(현장음)
\"만세\" \"회장님이 이겼어. 우리가 만세했어.”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있었기에 일제피해자들의
투쟁 또한 이만큼 올 수 있었지만 여전히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은 배상은 커녕 사죄의
말 한 마디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
그러는 동안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고,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인터뷰)김보나/이금주 회장 손녀
“우리 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후세들이 계속해서 이것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계속 말씀하셨거든요.“
MBC뉴스 송정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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