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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담다 5]정자가 있던 자리에 성당

박영훈 기자 입력 2020-11-23 08:40:30 수정 2020-11-23 08:40:30 조회수 1

◀ANC▶

개항 도시 목포는 종교 특히 천주교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일제는 개항초기 목포에
성당을 건립하려던 프랑스를 방해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목포 근대 시설 '역사를 담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개항과 목포 천주교의 역사를
박영훈 기자가 취재
◀END▶

목포 원도심에 웅장한 위용을 드러낸 성당.

마리아의 군대라는 뜻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평신도 조직인 '레지오마리애'의
첫 도입을 기념한 성당입니다.

성당이 들어선 곳은 목포시 산정동.

산에 정자가 있다해서 이름붙여진 산정동에
정자 대신 성당이 자리를 한 겁니다.

◀INT▶이정화 신부*지난 4월*
"레지오마리애가 지금 현재 50만명이 넘습니다.
그 첫째 시심단체, 최초로 이 곳(목포)에서
이 성지에서 시작됐습니다"

프랑스 드애 신부는 개항이 이뤄진 1897년
10월 중순 직접 말을 타고 목포에
주임 신부로 발령났습니다.

C/G]북교동에 임시교회당을 세우고 1년 뒤
목포시내 어디서나 십자가가 보일 수 있는
산정동 부지를 매입하고 산 이름도 프랑스의
한자 표기를 따 '법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제는 그러나 당시 관청인 무안감리서에
프랑스의 토지소유권을 증명하는
문서발급을 미루도록 압박을 가하면서
성당 건립을 방해했습니다.

산정동 성당 부지에 일본인 묘지를
조성하겠다는 거였습니다.

◀INT▶도민우 *목포대 사학과*
"열강들이 종교를 먼저 내세우고 나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C/G]프랑스 공사까지 나서 갈등이 정리됐고,
산정동 성당은 지금까지 5차례 변화를
통해 레지오마리애 기념성당으로
탈바꿈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제는
한국인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광주교구
2대 교구장에 일본인 신부를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섬지역 신앙 전파에
앞장섰던 목포성당은
성심소학교를 개설해 교육에 기여했고,
지역 의료 보급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INT▶한정훈 교수*목포대 사학과*
"이런 연구 작업들을 통해서 기본적인 자료를 구축했다는게 어떻게 보면 더 큰 의미가 있고 그것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될 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이같은 분위기 속에 1954년 건립한
경동성당과 60여년 전 주민들이
직접 만든 신안군 흑산성당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목포의 성당은 개항과 천주교의 역사를
조명하는 문화와 경제,종교, 건축사적 가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MBC뉴스 박영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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