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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담다3]근대 첫 각국거류지..일본영사관

박영훈 기자 입력 2020-11-19 21:15:29 수정 2020-11-19 21:15:29 조회수 3

◀ANC▶

대한제국이 계획도시로 개항한 목포는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행정권과 경찰권을
행사하는 근대 최초의 각국 거류지였습니다.

일본은 거류지에서 영향력을 갖기 위해
영사관의 부지에 집착했습니다.

목포 근대 시설 '역사를 담다'
오늘은 옛 일본 영사관에 담긴 이야기를
박영훈 기자가 취재

◀END▶

개항 3년 뒤인 1900년 목포에 세워진 옛
일본영사관입니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영국 등 다른
나라보다 큰 영사관 부지를 요구했습니다.

C/G] 대한제국이 부지가 너무 넓다며 면적을
절반으로 축소하자 일본은 위치에 집착했고
결국 거류지가 한눈에 보이는 유달산 자락을
차지했습니다.

영사관 옆에는 '공립병원'도 문을 열었습니다.

◀INT▶강태영 *시민*
"여기가 시청 자리였고 그 이전에 어른들한테 이 근방에 병원 자리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본전관거류지만 있던 부산,원산,인천과는
달리 목포는 여러나라가 함께하는 근대
최초의 각국 거류지였습니다.

C/G]거점 항구 목포에 눈독을 들인 일본은
영사관 건물이 건립되기전 조선시대 왜적의
해상침입을 막던 목포진까지 임시 영사관으로
사용하는 등 세차례나 옮겼습니다.

이탈리아 최고급 대리석 등 당시 만 4천원의
거금을 들여 목포 영사관을 세운 일본은
군산 분관을 두고 전남북과 제주,충남까지
관할했습니다.

C/G]일제의 지방 수탈 기관인 이사청이 설립돼
폐지될 때까지 8년 3개월간 목포영사관에는
3명의 영사와 2명의 영사대리가 부임했습니다.

심상소학교와 고하도에 우물을 만들어
거주 일본인들의 교육과 식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C/G]130건이 넘는 정보를 주기적으로 일본에 보냈고,쌀과 방적 등 상업과 관련한 보고가
전체 73%를 차지했습니다.

거류지 단체를 장악하고 부두노동자들을 탄압해 목포항을 일본 만의 거류지처럼 운영한
일본영사관은 일본 육군성 부지와 옥도,
고하도 등을 사들이는데도 관여했습니다.

◀INT▶고석규 *목포대 사학과 명예교수*
"당시에 이미 개항돼 있던 곳이 부산,원산,인천이 개항돼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 나머지 비어 있는 곳이 어디냐면 서남부와 북서부였거든요. 서남쪽에는 항구 조건을 가장 잘 갖추고 있는 곳이 목포였고요. 서북쪽으로는 진남포 즉 평양의 입구가 되는 곳이에요. 그래서..."

목포부청사,목포시립도서관,목포문화원을 거쳐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바뀐 옛 일본영사관은
일제 침략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교육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MBC뉴스 박영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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