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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담다1]'상업도시 목포로'..동양척식주식회사

박영훈 기자 입력 2020-11-16 21:15:48 수정 2020-11-16 21:15:48 조회수 3

◀ANC▶

123년 전 개항한 목포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근대 시설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지역 대학이 처음으로 목포의 근대시설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MBC는 동양척식주시회 목포지점을 시작으로
다섯차례에 걸쳐 목포근대시설에 담긴 역사를 보도합니다.

박영훈 기자입니다.

◀END▶

1897년 10월 1일 목포는 개항했습니다.

부산,인천,원산에 이어 네번째.

C/G]대한제국은 외국인 거주지역을 정하고,
바닷물을 막아 매립지를 만들었고,근대도시
목포가 탄생합니다.

일제의 국책회사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대한제국에 처음 설립된 건 1908년.

C/G]'척식'이라는 단어대로 중심사업은
자국민의 이민을 돕는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탈 기관이었고,전국으로
지점을 늘려갔습니다.]

나주평야 등 농토를 빼앗기 위해
영산포출장소를 운영하던 일제는 1920년
목포지점으로 확장 이전합니다.

◀INT▶강태건 *목포대학교 사학과*
"영산포는 직접 농업을 생산하는 생산지였는데 그런 부분들이 본인들의 (핵심)사업에서 빠지니까 이제 거점도시였던 목포로 이전했다고 생각합니다"

C/G]상업회의소 일부를 빌려쓰다 1년 뒤
'본정'으로 불리는 일본인 거주지내 중심
상업지역에 건물을 지어 본격 영업에 나섭니다.

상업도시였던 목포에 겉으로는 회사로
등록한 채 6개 주재소를 관할하며
토지 매매,돈놀이 등 특권사업을 진행했습니다.

C/G]특히,식민 지주를 늘리기 위해
조선인들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신안 섬지역 등 소작쟁의의 불씨를
제공했고,군산에서도 작업을 할 만큼
거둬들인 쌀들은 일본 오사카로 보내졌습니다.

광복 이후 해군 소유로 넘어간 이 건물은
일제의 상징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교육현장으로 활용해야한다는
시민들의 집단지성에 의해 부속건물만 헐린 채
보존됐습니다.

◀INT▶최성환 교수*목포대 사학과*
"1999년에 목포시민들이 동양척식주시회사를 보존하자는 운동을 통해서 문화재로 지정이 됐는데 그 이후로 한번도 정작 동척이 목포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어떤 부분에서 역사적 의미가를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남아 있는 부산지점 건물보다
규모가 큰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지금은 목포근대역사관 2관으로 전국에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박영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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