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MBC

검색

"사망자 더 많다"..40년 간 가려진 진실

박영훈 기자 입력 2020-05-20 08:04:29 수정 2020-05-20 08:04:29 조회수 1

◀ANC▶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가 아닌 해남에서도 군인들의 총격에 의해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정확한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공식 확인된 사망자는 2명,
그러나 지역 5.18단체들은 사망자 7명에
이른다며 정확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영훈기자가 만났습니다.
◀END▶

5.18 항쟁이 본격 시작된지 사흘 뒤인 1980년 5월 21일 아침.

해남군청 앞에 버스가 모여들었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온 광주 시민들이었습니다.

울분을 참지 못한 해남군민들은 경찰서와
파출소에서 무기를 가지고 나와
광주 진입을 시도했고 실패하자 하룻만인 22일
저녁 무기를 반납하고 자진 해산했습니다.

그런데 해산한 다음 날인 5월 23일 아침.
해남 목포,광주 방면 도로인 우슬재와 진도
방면 도로에서 발포가 이뤄졌습니다.

매복해 있던 군인들이 우슬재와 상등리
도로를 통해 들어오던 차량에 무차별 사격을
한 겁니다.

◀INT▶김병용 *당시 고등학생, 상등리 도로서 가슴 관통상*
"우리가 탄 버스가 2대 였어요. 정지했는데도 총을 계속 쏘더라고요. (총알) 파편상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고..."

공식 확인된 사망자는 당시 22살인 나주 출신 김귀환 씨 등 2명.

그러나 현장에 있다가 군부대에 끌려갔던
목격자들은 또다른 희생자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INT▶서환기 *나주 출신 당시 20세, 우슬재에서 군에 체포됨*
"옛날에 물동이 나르듯 (군인) 2명씩이 관을
(2개) 들고 갔어요. 그냥 나무관.우리는 (군부대에) 잡혀 있는 상태여서 (관이 산쪽으로) 지나가는 것만 봤죠.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해남지역 5.18단체들은 목격자들의 증언과
정황을 토대로 사망자가 많게는 7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광주가 아닌 해남인데다 향토사단 산하 해남지역 군부대가 사격을 해 상대적으로
40년 간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의 출범과
함께 공식 안건으로 채택됨에 따라
해남지역 발포 사건의 진실이 드러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MBC 뉴스 박영훈입니다.///

Copyright © Mokpo Munhwa Broadcasting Corp. All rights reserved.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