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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인물-5/19]5.18과 목포 그리고 김대중

양현승 기자 입력 2020-05-19 08:04:38 수정 2020-05-19 08:04:38 조회수 0

◀ANC▶
5.18 민중항쟁 당시 목포지역의
심장부였던 목포역이 5.18사적지로
지정됐습니다.

오늘 뉴스와 인물에서는
이춘웅 김대중정신계승회장과
목포의 5.18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ND▶

1. 목포 5.18 민중항쟁의 거점이
목포역이었습니다. 목포시민민주투쟁위원회가
설치됐던 곳인데요. 40년 전 이맘때
목포역광장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당시 목포 시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역전 광장에 가득 찼었습니다. 약 10여 일 간을 그대로 계속해서 계엄 하였지만 군인이나 경찰은 찾아볼 수 없이 데모단의 위압에 눌려서 그랬습니다.

2. 대규모 시위 속에서도 공동체 의식이
빛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목포의 항쟁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었나요.

우리는 광주 518 발생 원인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목포는 김대중 선생의 고향이고 그럼에도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 되겠냐. 우리도 일어나자. 그래서 목포역전 광장에서 데모를 시작했고 당시에 강수복씨 안철씨 두 분이 주도적으로 하셨죠. 그래서 우리가 데모를 시작할 때 광주와 같이 하자고 해서 차량데모를 하자고 해서 시내버스도 우리가 탈취해서 시내버스로 데모를 하자고 그 정보가 세어 나가서 태원여객에서 삼향면 왕산리 깊은 곳에 밤에 전부 숨겨 놓아서 시내버스를 못 찾고 중단이 됐고 또 역전 성문당 인쇄소에서 삐라를 무상으로 인쇄해 줬었습니다. 나중에 보안대에 성문당 인쇄소 주인이 끌려가서 죽도록 얻어 맞고 징역까지 살고 그랬었습니다.

3. 목포시민들은 40년 전,
김대중 석방과 계엄령 철폐를 구호로
외쳤죠. 목포 5.18과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관계가 있었나요?

광주시민들이 김대중 석방 계엄령 철폐 플랜카드를 걸고 데모를 하고 있는데 우리 목포에서 김대중 선생의 고향 목포에서 가만히 있어야겠냐. 우리도 일어나자 그래가지고 시작한 것이 목포역전 광장의 데모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당시 역전 상가는 거의 전부 문을 닫았고 심지어 은행에도 지키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약탈사건은 일절 없었습니다. 생명이 먼저다. 그런 정신으로 시작한 것이 목포역전 광장 데모의 시작입니다.

지금까지 이춘웅 김대중정신
계승회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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