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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맞는 5.18, 이제는 진상규명!

입력 2020-01-02 08:02:31 수정 2020-01-02 08:02:31 조회수 0

◀ANC▶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지난 세월
우리 민주주의를 밝히는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올해로 40년째..
사람 나이로 치면 불혹을 맞은 셈인데요.

하지만, 여전히 발포 책임자조차 찾지 못하는 등, 해결 못한 과제들이 훨씬 많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 리포트 ▶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 일어난 집단 발포.

국민의 군대가 자국민을 조준 학살한
이 충격적 비극의 진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미궁 속입니다.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5.18은 '우발적' 사건이라며 얼버무렸고,

◀ I N T ▶이희성 5.18 당시 계엄사령관 1988.11.18. 국회광주청문회
"(어느 부대가 언제 어디에서 발포를 했는가) 그와 같은 세부사항은 제가 파악할 수 없는 조그만 말단부대의 사건입니다."

실질적으로 군을 이끌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자신은 지휘계통에 없었다며 발뺌했습니다.

◀ I N T ▶전두환 (2003년 SBS 인터뷰)
"군대라는 것은 지휘계통에 의해서 딱 움직이는 거요. 나는 계엄사령관 부하요. 보안사령관은 보안사만 지휘하지 그 외에는 지휘권이 없잖아."

그렇다면 누가 총을 쏘라고 명령했는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검찰과 과거사조사위 등이
9차례나 조사를 벌였지만, 그 날의 '발포
명령자'는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천명의 광주 시민이 죽거나 다치고,
혹독한 고문 후유증에 목숨을 끊은 사람만
수십명이지만,

광주에 투입된 2만명 넘는 계엄군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사라진 가족의 흔적이라도 찾고 싶다는
유족들의 애타는 바람에도,
4백명 넘는 시민들은 시신마저 행방불명입니다.

그러는 사이..
5.18을 폄훼하는 망언이
국회에서까지 들려오는가 하면,

전재산이 29만원이라는 전두환씨는
5.18 증언자들을 대놓고 비웃으며
경찰의 경호 속에 호화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 I N T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광주 5.18 학살에 대해
서 한 말씀 해주시죠"
전두환: "광주학살에 대해서 모른다. 나는"

신군부에 목숨으로 맞선 광주시민들의 용기는
87년 6월항쟁으로 계승돼
우리 민주주의의 등대가 됐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까지 인정받았지만,

광주시민들의 한이
여전히 풀릴 수 없는 이윱니다.

◀ I N T ▶지난 3월 11일, 광주지법(전두환 광주재판 직후)
임근단/5.18 유족(고 김경철 어머니(최초 사망자)
"사죄하는 말 한 마디라도 있을 줄 알고 우리는 기다렸는데 그것마저도 기회를 놓치고 간 것은 마음이 아프고 정말로 사람 같으면 망월동에서 무릎을 꿇고(사죄해야죠)"

[ st-up ]
그래서 이제 막 출범한
5.18 진상조사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5.18 책임자를 제대로 밝혀내야만
그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ANC▶
◀END▶
◀V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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