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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14]끝내 찾지 못한 5명.."상상 못할 고통"(R)

김진선 기자 입력 2019-04-01 08:04:06 수정 2019-04-01 08:04:06 조회수 1


◀ANC▶

목포MBC 세월호 5주기 기획
'기억하는 우리, 진실의 증인'입니다.

바다와 선체를 몇차례 수색하고도
끝내 찾지 못한 미수습자들이 5명 있습니다.

누구보다 외로웠던
미수습자 가족들 곁에서 수년 동안
함께 해온 자원봉사자가 힘들었던
기억을 털어놨습니다.

◀END▶

출가를 준비 했는데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정말 안 갈 수가 없어서 달려갔어요. 대전에서 펑펑 울면서 달려갔는데 그렇게 자원봉사를 진도 실내체육관, 팽목항 하다 보니 어느 날 팽목항에서 과연 출가라는 게 무엇인가 라는 말도 안 되는 화두가 다시 생기게 된 거에요.//
그냥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이 현장에서 내가 필요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자리가 출가 자리다. 그런 순간의 번개 지나가듯이 깨침이 일어났어요.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그 긴 세월호를 여정을 왔던 것 같습니다.

진도 체육관 문고리가 굉장히 잡고 열고 들어가기가 어려웠던 시절 사고 난 지 2~3일 안 됐을 때. 그 당시 어떤 어머님이 며칠 째 물도 못 마시고 거의 거부 상태로 있었던 어머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그 어머님한테 어떻게 하면 물을 한 모금 먹을 수 있을까 물을 드시게 한 다음에 죽을 드시게 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어느 날 어렵게 겨우 어머님을 마주할 수 있어서 그 어머님한테 제가 손을 잡고 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제가 모든 분들이 다 찾아서 갈 수 있도록 갈 수 있을 때까지 그때까지 꼭 함께 하겠다고 봉사 중에 말 끝에 한 말이 저 스스로에게 책임이 지어 지기도 하고 사실 족쇄 아닌 족쇄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저는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다 보니 나중에 남은 사람이 열 명이었고 마지막 황재현 학생이 수습되었고 그렇게 해서 9명 최종적으로 네 명은 일부 유골을 다 찾았고, 마지막 뼈 한 점 못 찾으신 분들 5명 미수습자 가족분들하고 더 밀착 아닌 가족이 되었던 이유가 됐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실상 많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래도 2014년도 11월 11일 수색 종료를 가족들 스스로가 국민들에게 기자회견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더한 것을 기대하고 가족과 자식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때 더 할 수 없었던 것, 그때 참 많이 마음이 아프게 남아 있어요. // 인양이 나중에 되고 났을 때 9명을 다 찾지 못하고 5명을 결국 뼈 하나 못 찾았다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시신도 없는데 장례식을 치러야만 됐었던 것. 그런 것들이 마음 아프게 기억에 남고요. 많은 시간이 지체됨으로 인해서 국민들이 가슴 아프게 달려왔던 성원해줬던 2014년도의 마음들이 많이 손상이 가고 찢겨졌다는 것이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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