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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독립운동..전국성 개방성 특징(R)

입력 2019-03-11 21:14:33 수정 2019-03-11 21:14:33 조회수 1

◀ANC▶
목포의 3.1 독립만세운동은
지역민 중심으로 추진됐던 다른 지역과 달리
전국성과 개방성의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시 경제와 교육, 문화 활동이 활발한
근대개항도시의 특성상 ,전국에서 많은 인물이
목포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장용기기자
◀END▶

목포 유달산 3.1 독립운동탑 애국열사
명단 맨 앞에 새겨진 강석봉.

경남 김해에서 부친 강영숙을 따라 목포로
이주했으며 강씨는 영흥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42년 목포교도소에서 옥사한 독립운동가
배치문.

역시 김해 출신으로 20살때 가족이 목포로
이주했으며 목포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최근 배치문 지사의 행적은 고향 김해에서
활발한 학술 조명활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유달산 독립운동탑에 새겨진 37명과
목포 독립유공자 29명의 출신지를 보면
전남 서남권을 포함해 평양에서 대구,여수,
순천 등 전국적인 인적분포를 보이고 있습니다.

당시 근대개항도시 목포가 전국 6대도시로
떠올랐고 기독교와 학교 등 경제,교육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INT▶ 박승 향토사연구위원(목포문화원)

"일본이 쌀,소금 ,면화를 가져가는 항구였기
때문에 많은 일자리도 있었습니다. 일자리를
위해서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까 의식이 통하게 되고 행동이 하나가 되서
독립운동의 기점이 됐던 겁니다."

목포가 근대문화유산의 식민도시라는
외형적인 일제잔재 못지 않게 전국적인
독립저항운동의 중심지 역할도 수행했던
것입니다,

◀INT▶ 김휴환 의장(목포시의회)

"목포에서 활동한 전국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행적을 찾는 데 후손들을 대신해서
목포시의회가 앞장 서겠습니다."


일제치하 법원, 교도소가 있었던 목포는
신안 하의도와 암태도 소작인들의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또 전국에서 모여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거점이었습니다.

3.1 만세운동 100주년.
이들의 출신지역 여부를 떠나
독립운동 행적을 찾아내
근대도시 목포의 정신적 유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mbc 뉴스 장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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