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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전 14연대 병력에 의해
여수에서 시작됐던 여순 사건은
사흘만에 인근 순천과 광양
구례,하동까지 확산됐습니다.
하지만 정부에 의해
9일만에 진압되고
양민학살만 수천명에 이르게 됩니다.
당시 영상 자료를 통해
여순 사건의 날짜별, 지역별 상황을
조희원기자가 정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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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19일,
여수주둔 14연대 병력이
제주도 진압작전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여순사건.
하루만에 여수 전역을 점령한 14연대 병력은
삼일째 접어들면서
순천과 보성,광양은 물론
구례, 하동까지 진출합니다.
경제악화와 정치에 불만이 쌓여던
대중들이 가세하면서
병력은 전남동부지역 전역을
순식간에 점령하게 된겁니다.
이에 정부가
반군 토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토벌사령부를 설치한 뒤
22일 여수,순천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22일 순천 동천전투에서
패배한 14연대는 주력부대가
광양 백운산으로 빠져나가고
23일 아침, 순천은 진압군에 탈환됩니다
11개 연대와 기갑부대,
해군 상륙정으로, 여수만을 포위하면서
함포사격과 시가전끝에
여수시 전역이 탈환됩니다
이어 반군과 부역자 색출작업 등
단 9일동안의 역사 소용돌이속에
계엄군 발표로
양민들의 희생 규모만 2천2백여명에 이릅니다.
여순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양민들의 희생이 컸는데도
사건 진상은 70년째 제자리를 찾지 못한채
한국 근대사의
암울했던 오욕으로 남아있습니다.
mbc뉴스 조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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