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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투데이)"계엄군 과격 진압 5.18 원인" 비망록

입력 2018-05-11 08:18:48 수정 2018-05-11 08:18:48 조회수 0

◀ANC▶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명령을 거부해
혹독한 고문을 당한 故 안병하 치안감이
본인이 겪었던 5.18을 자필로 작성한
비망록이 5.18기록관에 기증됐습니다.

안 치안감은 비망록에서
계엄군의 과격 진압 등이 광주 항쟁을
발생하게 한 원인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송정근 기자입니다.

◀END▶

80년 5월 3일부터 24일까지
전라남도경찰국장이었던 故 안병하 치안감이
직접 자필로 쓴 5.18 비망록입니다.

안 치안감은 88년 작성한 A4용지 6장 분량의
비망록에 (CG1)자신이 지켜본 5.18 항쟁은
계엄군의 과격 진압이 원인었다고 적었습니다.

또, 악성 유언비어 유포와
김대중 전 대통령 구속이
시민들을 자극했다고 기록했습니다.//

(CG2) 계엄군의 폭력 진압이 있기 전까진
광주는 다른 시도에 비해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고,
5월 16일 박관현 열사가 주도한
민주화대성회도 사고없이 마무리 됐다고
당시 상황을 적어두었습니다.

(CG3) 경찰이 철수한 상태에서도
시민군에 의해 치안이 유지돼
강력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광주 정신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인터뷰)안호재/故 안병하 치안감 아들
"광주에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고 죄송스럽다. 5.18 때 계엄군만 투입되지 않았으면 자체 병력으로 자체 치안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아쉬워했습니다.)"

안 치안감의 부인인 전임순 여사도
80년 5월 17일까지 광주에 머물면서 경험했던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 과정을 증언했습니다.

(인터뷰)전임순/故 안병하 치안감 부인
"(군인들이) 곤봉으로 마구 때리고 그 자리에서 피투성이 되고 학생들을 질질 끌면서 차에 태우곤 하였습니다."

5.18 유족들과 안 치안감 유족은
망월동 5.18 구묘역을 찾아 5월 영령들을
참배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안았습니다.

(인터뷰)임근단/5.18 유족
"우리가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은 한편 참 마음이 흐뭇한데.."

안병하 치안감은 80년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하다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8년 뒤에 후유증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2006년엔 국가 유공가로 지정됐고
지난해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추서됐습니다.

MBC뉴스 송정근입니다.

◀ANC▶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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