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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좌익에 부역한 보도연맹원들을
사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풀어준
당시 구례경찰서장의 결단이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경찰서장의
인도주의적 결정을 60년만에 확인했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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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24일.
좌익이나 북한군에 부역한 혐의로 보도연맹원 480명이 전남 구례경찰서에 끌려왔습니다.
당시 경찰에는 이들을 사살하고 후퇴하라는
지시가 내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종삼 당시 구례경찰서장은
"석방해줄테니 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돼 달라"며 "이 조치로 내가 죽더라도
여러분이 새 사람이 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습니다.
◀INT▶이강재
안서장의 석방조치로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구례에서는 민간인 학살이 최소화될 수 있었습니다.
◀INT▶안승순/안종삼 서장 아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진실화해위원회가
전남지역 보도연맹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60년만에 확인됐습니다.
◀SYN▶과거사위 관계자/
당시 보도연맹 가입자수는 30만명에 이르렀는데 이 가운데 수만명이 즉결 처분에 따라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념보다 사람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겼던
경찰서장의 결단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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