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 커 ▶
45년 전 서울에서 1980년 5·18을 알리기 위해
분신사망한 고 김종태 열사 추모식이
지난 주말 5.18민주묘지에서 열렸습니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대선을 거치면서
그의 희생정신이 다시한번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김종태 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져 관심을 끌었습니다.
김영창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분신해 숨진 고 김종태 열사.
부산이 고향인 고 김종태 열사는
5.18이 끝난지 13일 만인 1980년 6월 9일
서울 이화여대 앞 사거리에서
"광주 시민과 학생들의 넋을 위로한다"며
분신을 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23살.
김 열사의 넋을 기리는 추모식이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렸습니다.
◀ SYNC ▶원연순 / 김종태기념사업회 총무
"오늘(14일) 이 추모식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죽음으로 피의 시를 쓰신 민주화열사
김종태 희생이 내란을 종식시키고.."
45년이 지난 지금,
그의 희생 정신이 12.3비상계엄과 탄핵,
대선을 거쳐 다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김 열사는 5.18당시 성남에서
이해학 목사가 세운 주민교회를 다녔습니다.
그의 희생 이후 매년 주민교회에서는
추모식이 열렸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종종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과거 시민운동을 하다가
수배가 내려지자 주민교회에서
숨어지내기도 했습니다.
◀ INT ▶김종수 / 김종태 열사 동생
(5.18당시) 광주시민들이 무참하게 도륙당하고
그 죽음을 아파하는 종태형과 그 죽음을 아파하는 이재명 변호사는 광주시민들 때문에
맺어진 관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대학생 시절 자신을 가장 크게
성장시킨 것이 5.18이라고 꼽은 이재명 대통령.
본인처럼 소년공 출신이었던 김 열사의 죽음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겁니다.
◀ SYNC ▶이재명 대통령(5월 17일 / 대선 후보 시절)
그게 바로 저는 광주의 위대함이다.
그게 바로 이재명을 사회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어머니, 사회적 어머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 김종태 열사가 희생된지 45년이 지났지만,
그의 민주주의 정신이 여전히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MBC뉴스 김영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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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취재기자
보도본부 뉴스팀 사회시민 담당
"불편한 진실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습니다."